지난 8월 16일 개막한 평창남북평화영화제에서는 ‘강원도의 힘’ 섹션을 선보여 주목 받았다. 최근 강원도 시네마의 힘을 보여주는 섹션으로, 김진유 감독의 <나는보리>를 비롯해 강원영상위원회가 지원한 단편 <그러려니>, <대리>, <빨간 캐리어>, <여름비> 등 다양한 장르와 테마를 지닌 작품 네 편이 상영됐다. 8월 18일 오후 7시 강릉 CGV에서는 평창남북평화영화제 김형석 프로그래머가 진행하는 <메이드 인 강원> 스페셜 토크가 진행됐다.
<나는보리>는 엄마와 아빠 그리고 남동생까지 모두 청각장애인인 가정에서 유일하게 말할 수 있는 소녀 보리의 이야기를 잔잔하고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으로, 강릉에서 나고 자란 김진유 감독이 강원영상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자신의 고향을 배경으로 만든 영화다. 이날 스페셜 토크에는 김진유 감독과 김아송, 이린하, 곽진석, 허지나 배우가 참석했다.
김진유 감독은 “농아인협회 주최 행사에서 한 농인이 ‘어렸을 때 소리를 잃는 것이 꿈이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었는데, 나 자신도 어렸을 때 그런 생각을 했던 기억에서 출발했다”며 “목소리가 없는 영화라고 해서 찍는 방법이 다르거나 특별히 다른 형식을 취하고 싶지 않았다”고 밝혔다. 배경에 집중하며 소리가 배재된 공간에서 촬영된 작품답게 곽진석 배우는 “소리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었다”고 후기를 전했고, 김아송 배우는 “바다라는 공간에서 촬영하다 보니 감정을 잡기가 더 수월했던 것 같다”고 밝혔다.
김형석 프로그래머는 “소리를 잃고 싶다고 말하고 있는 영화이지만 역설적으로 소리가 많이 강조된 영화인 것 같다”고 전했다. 김진유 감독은 영화 속에서 보리가 소리가 안 들린다고 부모에게 말하는 장면에 대해 “농인 부모들은 아이를 가졌을 때 농인으로 태어났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 농인 부모 밑에 청인 아이가 태어났을 때 생기는 벽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영화 속 부모님의 반응이 현실적인 반응이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열린 토크 프로그램에서는 강원도에서 영화를 만드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이야기해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으로 주목 받았다. 영화 배경으로는 매력적인 공간이었지만 영화 제작에 대한 시스템은 부재했던 강원도 영화 제작의 본격적인 시작은 2017년이었다. 강원영상위원회(위원장 방은진)가 출범하면서 체계적인 제작 지원과 지역 영화 문화 발전이 시작됐고, 때 맞춰 강원도 출신 감독들의 활약도 시작됐다. 춘천 출신의 김대환, 장우진 감독이 만든 ‘봄내필름’이 대표적. 두 감독은 번갈아 가며 서로 프로듀서와 감독을 맡는 시스템을 통해 여러 영화제에서 성과를 거뒀다.
2014년에는 김대환 감독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철원기행>으로 뉴커런츠상을 수상했고, 같은 해 장우진 감독은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새 출발>로 ‘한국경쟁’ 대상을 받았다. 이후 장우진 감독은 <춘천, 춘천>(2016)으로 부산국제영화제 ‘비전’ 감독상을 받았다.
해외 영화제에서의 성과도 괄목할 만했다. 김대환 감독은 <초행>(2017)으로 로카르노영화제에서 ‘현재의 감독’ 감독상을 받았다. 그리고 두 감독은 모두 베를린영화제 ‘포럼’에 초청 받았으며, 이외에도 전 세계 수많은 영화제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최근엔 김진유 감독의 <나는보리>(2018)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감독조합상(감독상)을 받고, 강원독립영화협회가 설립되며 저변을 더욱 확장했다.
강원도의 영화적 저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던 평창남북평화영화제는 오는 8월 20일 시상식을 마지막으로 폐막할 예정이다.
김지성 기자 news@reporternsid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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